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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by 플러스토리 2023.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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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미국 ABC 방송에 〈아메리카 퍼니스트 홈 비디오〉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런 장면을 우연찮게 봤습니다. 

 

유치원생들이 한 명씩 단상에 올라 자신의 꿈을 발표합니다.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것으로, 대부분의 어린이가 우리 어릴 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꿈을 짤막하게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독특한 두 어린이가 나타났습니다.

 

옆에서 선생님이 “너는 커서 이다음에 뭐가 될래?” 하고 물으니 냉큼 “전 뱀파이어가 될래요.”라고 말합니다.

 

우리 어렸을 적에도 로봇이 되고 싶다고 했던 친구가 있긴 했지만 세상에, 뱀파이어라니! 그런데 뒤이어 단상에 오른 아이의 꿈이 더 걸작입니다.

 

“전 자라기 싫어요(I don't wanna grow up)!”

 

뱀파이어가 되고 싶은 것도 자라고 싶지 않은 것도 불가능한 꿈인데, 아유 저걸 어쩌나 하며 한바탕 기분 좋게 웃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세상엔 불가능한 꿈도 있습니다.

 

불가능해도 유쾌한 꿈이 있습니다.

 

 

 

키가 자라고 힘이 세지면 다 어른이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어른, 즉 성년의 기준은 키도 힘도 아닌 나이입니다.

 

한국 민법에서는 만 19세를 ‘사람이 독립하여 법률행위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인정받는 연령’으로 보고, 만 19세 이상을 성년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어른의 기준을 ‘나이’가 아니라 ‘능력’에 두고 차별을 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늘날엔 재미있는 상상으로 그치고 말 이야기지만, 옛날엔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상투’와 ‘비녀’가 바로 그 표시입니다.

 

혼례를 치르면 상투를 틀고 비녀를 꽂는 것으로 아는 이들이 많은데, 혼례가 아니라 관례를 치른 표시입니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치러야 할 통과의례를 관혼상제(冠婚喪祭)라고 합니다.

 

이중 가장 중요하게 여겨 맨 앞에 둔 ‘관’은 오늘날로 말하면 ‘성년의 날’입니다.

 

보통 열다섯에서 스무 살 사이에 남자는 관례를, 여자는 계례를 치렀습니다.

 

부모가 예법을 잘 아는 친구에게 빈(賓)이 되어주길 청해 진행하는데,

 

관례일에 처음 시행하는 예가 시가례(始加禮)로 남성에게는 상투를 틀어 망건을 씌워주고 여성에게는 땋은 머리에 비녀를 꽂아주었습니다.

 

 

 

관례는 이제 이 아이가 어른이 됐으니 주위 사람들 모두 어른으로 인정해 주기 바란다는 일종의 공표였지요.

 

상투를 못 틀면 어른이 아니라는 말을 장가를 못 가서 어른이 아니라는 말로 이해했는데,

 

혼례가 아니라 아직 관례를 치르지 못해 어른이 아니라는 뜻이었습니다.

 

실제로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상투를 틀지 못했거나 비녀를 꽂지 않았으면, 일을 해도 품삯을 절반밖에 받지 못했고,

 

어딜 가도 나이와 상관없이 반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오히려 미혼이라도 관례를 마치면 어른으로 대우받았는데, 선조들이 관례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지요.

 

 

 

그만큼 중요한 관례니만큼 관례자에게 일정한 기준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북한산 백운대 정상에는 150센티미터 폭을 가진 낭떠러지 벼랑바위틈이 있는데, 안평대군과 수양대군이 뛰어넘어 어른으로 인정받았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국민 대다수가 농민이었던 농촌에서는 ‘돌 들기’가 성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기준이었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을 청년들이 한 명씩 돌아가며 자신의 몸통만큼 커다란 바윗돌을 들고 지정한 장소까지 돌다 오거나 스물하나를 셀 때까지 버텨야 성인으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돌 들 힘이 있으면 농사를 제대로 지을 힘이 있는 것이고, 농사를 지을 힘이 있으면 농사에 필요한 지식도 있다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이런 풍습은 전북 임실, 경남 거창 같은 곳에서 1980년대까지 계속 이어졌습니다.

 

성인으로 인정받으면 품삯도 두 배로 받을 수 있고, 더 이상 반말을 듣지 않아도 되고, 결혼할 수도 있으니 개인으로서도 관례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의식이었을 것입니다.

 

 

 

성년식은 우리나라에만 있지 않았습니다.

 

아마존 정글에 사는 사타레 마오에 인디언은 독개미가 들어있는 장갑을 끼고 10분 동안 견뎌야 했습니다.

 

파푸아뉴기니의 세피 족은 온몸에 깊은 흉터를 내는 의식을 치르는데, 악어처럼 보여야 멋진 남자 어른이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마사이 족은 혼자서 사바나의 대초원에 나가 사자를 때려죽여야 성인으로 인정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모두 어른이 됐을지 의문입니다.

 

또 미국의 나바호 부족은 열세 살에 성년식을 치르는데, 맹수가 나타나는 깊은 계곡에서 혼자 하룻밤을 지내야 한다고 합니다.

 

나바호 부족민들 역시 모두 어른이 됐을 것 같지 않습니다.

 

 

 

옛날 같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소리 들어도 시원찮을 나이를 먹었으면서 아직도 나는 어른이 아닌 것 같다고 느끼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혹시 제대로 성년식을 치르지 않아서는 아닐까 싶어 집니다.

 

앞서 말한 성년식에는 공통점이 있지요.

 

성인으로서 겪게 될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견디는 능력을 시험했다는 것입니다.

 

 

 

성년의 날은 축하받는 날이 아니라 시험 치르는 날이었고, 용기 있고 인내심이 강해야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일종의 성인자격 시험이었던 셈입니다.

 

만약에 어떤 상황에서도 용맹하고 잘 참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만 성인자격증을 발급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는 나이에 상관없이 하대하고 급료도 절반만 주고 투표권도 주지 않고 아이 취급을 한다면 어떨까요.

 

상상으로 그칠 이야기지만 속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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